공원에 대한 발상부터 달랐다 도시재생으로 생태공원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도심 공원의 대표주자, 뉴욕 센트럴 파크에 관한 일화는 유명하죠.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에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생길 것”. 시인이었던 윌리엄 컬런 브라이트가 한 말이었다고 해요. 시인의 안목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죠. 그런데 말이죠, 모든 공원이 비슷비슷한 생태공원이어야 할까요? 혹시 아파트처럼 공원도 ‘복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공원은 이래야 한다’는 기존 관습에 삐딱한 아이디어를 제안한 건축가가 있어요. 파리의 라 빌레트(La Villette) 공원으로 가보실까요? 파리 북동쪽 19구에 라 빌레트라는 공원이 있어요. 원래 이곳은 1974년까지 100년간 거대한 도축장과 가축시장이 있던 곳이었는데요, 파리시가 확장하면서 혐오시설인 도축장은 교외로 이전되고 이 지역은 점점 슬럼화되었다고 해요. 1981년에 취임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파리의 위상을 다시 일으키고자 했어요. 국립도서관을 비롯해 루브르 미술관의 유리 피라미드도 이때 세워진 것이죠. 라 빌레트 지역은 국가 주도 프로젝트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거대한 부지에 산업과학기술 복합문화공간을 포함해서 공공문화시설을 확충할 계획이었거든요. 세계적인 건축공모에 전세계 건축가들이 응모했는데 1등은 놀랍게도 스위스 출신의 30대 신예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에게 돌아갔어요. 이변이었죠.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건축가에게 ‘작은 도시’를 구축하는 일이 주어졌으니까요. 과학산업관 파리 필하모닉/장 누벨 건축 Movie Night 라 빌레트 공원은 경계도 없고 입구도 없어요. 남북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두고 북쪽에는 과학 산업도시, 남쪽에는 과거 도축장을 리모델링한 그랜드 홀과 파리 국립음악원 등 음악도시가 있어요. 그리고 바로 공원의 핵심 공간인 ‘미래도시’에 바로 추미의 건축언어가 적용되어 있죠. 추미는 해체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고, 당시 건축의 중요한 요소였던 ‘기능’을 배제시켰어요. 건축가가 의도한 공간보다 사용자가 만들어가는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프로그램, 사람들의 행위, 이벤트가 없는 건축은 건축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고요. 폴리(folie) 폴리(folie) 폴리(folie) 라 빌레트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폴리(folie)라는 이름의 빨간 조형물들이에요. 파리의 전통 정원에 있던 별장 개념인 폴리 26개를 120m 간격으로 공원 전체에 세웠어요. 10m 높이에, 공원 전체에 규칙적으로 배열된 폴리는 라 빌레트 공원을 상징하는 핵심 요소죠. 상업시설이나 이벤트 등에 활용되기도 하지만 주어진 용도는 없어요, 사용자의 몫일 뿐. 정사각형에서 파생된 미완성 형태인 폴리는 그 자체로 해체주의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추미는 점, 선, 면을 이용해 전체 공원을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했어요. 26개의 폴리들이 점을 의미한다면 파도처럼 물결치는 캐노피 산책로는 선을 이루고 있고요, 광장이나 그라운드는 면을 이루고 있죠. 점, 선, 면의 연결을 통해 시각적인 자극을 준다고 할까요? 이것이 추미가 그린 21세기 미래형 도시공원이자 파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라 빌레트 공원이에요. 15년의 공사 끝에 완공된 것은 1993년. 생각해보면 라 빌레트 공원이 만들어진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문화예술 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에 무명의 건축가가 당선된 것도, 기존의 공원 문법을 버리고 대담하게 해체주의와 접목시킨 추미의 실험도, 15년에 걸쳐 완성시킨 정부의 추진력까지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해요. 라 빌레트 공원은 도시, 빌딩과 대립되는 생태공원이 아니라 도시의 연장선에서 기획된 공원이죠. 더 많은 생태공원이 생기는 것은 반갑지만, 우리의 공원에도 다양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도시의 맥락 읽기, 마블로켓 어반 리서치 +Editor's Pick : 모든 공간에는 비밀이 있다, 최경철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공간일수록 공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무뎌지기 쉽죠. 이 책은 도시생활에 파묻힌 우리에게 도시의 공간을 다시 볼 수 있는 24가지 질문을 던져줍니다. 좋은 공간, 좋은 도시,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고를 확장시켜 주고요.공공건축은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지, 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한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전문적이지만 친절한 책이에요. 카카오톡 친구추가로 매주 목요일 노트를 받아보세요!https://pf.kakao.com/_xfQxbpxj/friend 이미지 출처:https://lavillet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