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국회의사당이 유리 돔인 이유 정치는 조심스러운 화제죠.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첫번째 어반리서치 테마는 대의정치를 상징하는 의사당으로 잡았습니다. 뭐든 용감하게 접근해보겠다는 마블로켓의 각오라고 할까요?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정치에 그다지 관심 없는 여행객들에게도 매력적인 랜드마크에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베를린 국회의사당으로 온라인 탐사를 시작해볼게요.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화두를 던지는 곳이니까요. 1933년, 히틀러가 총리 자리에 오르며 독일은 광기에 휩싸이죠. 히틀러가 권력을 쥔 그 해, 국회의사당은 대화재가 일어납니다. 화재인지, 방화인지, 방화라면 방화범은 누구인지 상관없이 히틀러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반국가적 행위로 몰아붙이면서 권력의 고삐를 더 세게 움켜쥐죠. 대화재가 할퀴고 간 독일 국회의사당은 1945년, 패전과 동시에 폭격으로 폐허가 됩니다. 그 이후독일의 역사는 익숙하죠. 동서독으로 나뉘고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며 우리처럼 분단국가를 경험하다가 1990년에 극적으로 장벽이 무너지죠. 국회의사당 재건에 대한 논의는 1992년부터 활발히 이루어졌어요. 통일독일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인만큼 세계적인 규모로 건축 공모를 했고요. 많은 독일 팀들이 지원했지만 최종 당선자는 놀랍게도 영국 출신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였어요. 전쟁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영국 설계자의 선정은 화제가 됐죠. 프로젝트는 난항을 거듭했다고 해요. 워낙 의미가 큰 건물이다 보니 설계자의 의견이 한 번에 통과되기 쉽지 않았겠죠. 수많은 논의 끝에 신축이 아니라 원형을 보존하되 국회의사당의 주요 구조물인 돔을 새롭게 교체하는 걸로 논의가 모아졌어요. 돔의 디자인에 대해서도 의견은 분분. 노먼 포스터가 내민 카드는 ‘투명성’이었어요. 이렇게 해서 베를린 국회의사상은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투명한 유리 돔의 형태를 갖게 됐어요. 내부에는 폭격 맞은 흔적과 러시아 군인의 낙서까지 그대로 살려 두었어요. 역사적 보존의 의미로요.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정치적 해석력은 정말 탁월한 것같아요. 유리 돔은 디자인 측면 외에 두가지 기능이 있어요. 하나는 이곳을 전망대로 만들어 베를린 시내를 조망할 수 있게 했고요, 다른 하나는 유리를 통해 10m 발 아래의 국회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한 점이에요. 유현준 교수는 1999년 복원된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민주주의 완성을 보여주는 통쾌한 건축’이라 말했죠. 유리돔은 예약만 하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어요. 돔의 중앙에는 360개 거울이 달린 원뿔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데요, 햇빛을 본회의장으로 모아주는 기능은 물론 공기를 순환시켜 돔 상단의 개구부로 빠져나가도록 환기도 시켜주고요. 유리 돔이 다시 보이지 않나요? 정치인들의 의정활동을 지켜볼 수 있는 국회의상당은 베를린 시내를 전망할 수 있는 랜드마크이자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친환경 건물이기도 하니까요. 도시의 맥락 읽기, 마블로켓 어반 리서치 +Editor's Pick :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베를린을 공공 미술과 역사 조형물의 프레임으로 접근한 책이에요. 독일이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 하는 방식을 볼 수 있어요.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던 사람들, 동에서 서로 탈출하다 희생된 사람들,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는 사람들, 이념적으로 대치했던 상황을 어떻게 공공 예술로 풀어내고 있는지 읽다 보면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에요. 카카오톡 친구추가로 매주 목요일 노트를 받아보세요!https://pf.kakao.com/_xfQxbpxj/friend